시간의 감각

2023.05.13 - 06.11

About

미디어학자인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는 일찍이 그의 글에서 인류의 미래는 온도의 변화로 도래한다고 하였다. 오존층의 파괴와 온실가스의 증가 이로 인한 기후변화, 빙하의 소멸 등 우리의 미래에 대한 근심은 온도에서 기인한다. 뉴미디어 그룹 dont think(황민수+최학송)의 이번 작업은 바로 이 온도를 담고 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담고’ 있다. 

 과거의 사진은 피사체와 사진을 찍은 환경을 함께 담아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피사체의 기분이나 감정, 분위기(심지어 더위와 추위 역시)를 담아 낼 수 있지만 그때 그 순간의 물리적 정보로서는 담을 수 없었다. 과거의 사진의 정의는 광학적 방법으로 감광판에 박아낸 물체의 영상이라는데 국한되었다면 현대의 사진은 더 많은 것을 포괄한다. 빛의 범주를 벗어나 MRI 자기공명이나 전파로 수신되는 천문관측 위성사진 이미지도 사진이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사진 이미지도 사진의 범주에 들어간다. 나아가 영상이 찍힌 순간의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서는 더 많은 감각적 정보를 사진에 담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온도는 물체나 공간의 열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dont think가 작업에 사용한 데이터 값의 온도는 인체의 체온이나 사물의 온도가 아니라 기상학에서의 대기의 온도로 이번 작업에서 사진 및 영상이 촬영된 시간대의 기온 데이터 그리고 촬영시 동시 녹취한 음향을 함께 담아 작가의 예술적 감성으로 시각화하였다. 기실 dont think가 온도를 담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기후변화와 인류의 위기와 같은 무거운 화두라기 보다 우리의 일상이다. 생활속의 사건들, 즉 우리의 일상은 다양한 종류로, 수많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로 기록된다. 우리 일상의 인상적인 시간(時間)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수집 및 채취된 그 순간의 온도의 데이터는 디지털 프로세싱 작업을 통해 극대화되고 감각적으로 증폭되어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며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된다. 

 

 형태를 갖춘 듯 보였던 이미지의 경계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싶더니 이내 흩어져 버린다. 화면 속의 사물이, 인물이 그리고 풍경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고 뭉개지며 흩어지는 모습은 마치 우리 삶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우리 자신은 언제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든다. 나는 어떻게 나인가? 경험이 나인가? 의식이 나인가? “몸은 모인 물거품, 느낌은 물 위의 거품, 생각은 봄날의 아지랑이…” dont think는 작품의 제작의도나 작업의 과정들을 구구절절히 기술하지않고 모든 인식은 허깨비 같다는 불교 경전 <잡아함경(雜阿含經)>의 한 구절을 본인들의 작업을 설명하는 작가노트로서 툭 던져놓는다. 

 경계를 흐리며 사라져가는 존재로부터 dont think는 오히려 역으로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고자하는 포이에시스(poiesis)를 펼쳐낸다.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은 고정된 형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한다는 현대철학의 생성존재론(Ontology of becoming)이 여기서 읽힌다. 순수예술로서 사진의 재현 대상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거의 무의식적이고 직감적인 작가의 감각에 의해 포착된 형이상학적인 것들이다. 사진 이미지는 작가의 감각에 의한 존재론적 재현도구이며 예술가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생성을 포착한다. 아마도 현대철학의 생성존재론이 연상되는 것은 dont think의 치밀하게 계산되고 의도된 결과라기 보다 바로 그 동물적 감각의 결과물일 것이다. 현대미술은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어 있지않고 작가의 의식 형태가 곧 작품이 된다. dont think의 작업이 의미있는 이유는 이런 존재론적 깨달음을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철학적 사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거쳐 관람자의 감성에 가 닿아 작가와의 생각을 소통 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관람자는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지적 쾌감을 느끼게 된다. 예술은 ‘진리’의 문제이면서 ‘즐김’ 혹은 ‘즐거움’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dont think는 이것도 놓치지 않았다. 작품을 보러오는 관람객이 뉴미디어 아트에 기대하는 어떤 것(특별한 사운드와 빛의 향연)을 충족시키고자 유희적인 부분도 세밀하게 고려하였다. 

 “예술은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예술의 실천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어떻게 존재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라 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강령에 충실했던 dont think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의식안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작가의 시간을 감각해보자.

 

-기획글 중 일부(황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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