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pace LAF 2025 공모 선정 작가전

김여운 개인전: 너에게로 가는 길

2025.07.17. - 08.09.

<너에게로 가는 길> 
MDF, 프라이머, 원목, 스프링, 낚싯줄, 황동 종, 시트지, 천에 자수 등 혼합재료
게이트: 230(h)x123.4(l)x620(d) 길: 20미터 (최소 10미터 권장), 2025

고요하게 울리는 연대의 미학

 

전시장 중앙, 어떤 구조물이 놓여 있다. 
얼핏 보면 문처럼 보이지만, 닫히지도 않고, 막히지도 않은 이 구조물은 하나의 통로, 그리고 마주함의 자리로 작동한다.
<너에게로 가는 길>(2025)은 두 사람이 동시에 걸어 들어와야만 작동하는 설치작품이다.
양쪽에서 두 사람이 걸어와 서로를 마주한 그 순간, 종이 울린다. 혼자서는 울릴 수 없고, 상대를 기다려야만 울릴 수 있다.
작품을 덮고 있는 패브릭에는 “Way to You”, “Way to Us”,“Way to Me”(윗면에 적혀있어 관람자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다.
이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길’에 대해 암시한다. 이 작품은 김여운 작가가 오래도록 탐색해 온 질문.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도달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자, 조용하고도 깊은 윤리적 제안이다. 이 전시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되었다.
어둠 속 핀 조명, 은은하게 울리는 음악, 서로를 향해 걷는 두 사람의 거리. 김여운은 관객이 직접 바라보고, 다가가고, 머무는 감각적 과정을 중요시한다.
전시 공간 전체가 내면적 거리와 관계의 실천을 은유하며, 관람자는 ‘너’를 마주하면서 ‘나’에게 도달하는 길을 걷게 된다.

 

<Action>
리넨에 유화, Cotton mat, Museum acylic, 원목액자 39(l)x44(h)x7.5(d)cm, 2024

전시장의 벽면에는 정교한 붓터치로 그려진 작은 자수훈장들이 고풍스러운 액자 안에 정중히 놓여 있다. 
Love(사랑), Empathy(공감), Altruism(이타심), Peace(평화), Solidarity(연대), Understand(이해).
이들 각각은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마음의 기록들이다. 화면 위에 머문 붓질 하나하나에는 사색과 경의가 담겨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 바느질한 듯 보이도록 극사실적으로 재현된다. 보는 이들은 그 작은 회화 앞에 다가가야만 비로소 그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훈장은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지며, 단단한 위계와 명예를 상징하곤 한다. 그러나 김여운이 그리는 훈장은 그 기원을 되짚는다.
과거, 훈장은 천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김여운은 조용히 누군가의 가슴에 새겨진 신념, 정성스레 수놓던 손의 온기에 주목하며,
더딘 손의 노동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인정의 깊이를 소환한다. 작가가 지은 훈장은 사회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실천을 품은 다수의 존재들에게 건네는 말 없는 찬사일 것이다.

<Understand>
실, 의자 160(l)x100(h)x60(d)cm, 2025

김여운의 작업은 언제나 ‘인간다움(humanity)’을 중심에 두고 있다.
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훈계하듯 외치는 윤리가 아니라, 타인과 나, 그리고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구조화하기보다는 사적인 사유와 감정의 결을 통해 사회를 응시한다. 이 전시는 관람자에게 단순한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다가서길 권유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거리도 다정함도 공존하며, 그 관계는 작가의 표현처럼 ‘쌍방의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작동한다.
여기서 ‘너’는 단지 관계 속의 일방적 대상이 아니다. 이 전시가 말하는 ‘너에게로 가는 길’은, 나와 다르고 낯선 타자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타자를 향한 조심스러운 인식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된다.
이것은 애매한 추상적 연대가 아니라 너와 나, 구체적인 두 존재가 각자의 자리에 서서, 조용히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이러한 구조는 동양철학의 관계적 세계관을 환기시킨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인(仁)은 타인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동시에, 반드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덕목이다.
<너에게로 가는 길>에서, 둘이 함께 도달해야만 종이 울리는 구조는 바로 이러한 ‘인’의 윤리를 공간적으로 구현한다.
한편, 불교의 핵심 개념인 연기(緣起)역시 이 작업과 맞닿아 있다. 연기란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 속에 성립된다는 세계관으로, ‘나’의 존재는 ‘너’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이 전시에서의 도달과 울림, 그리고 관계는 모두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서로에게 조건이 되는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철학은 모두 타인을 향한 존중과 실천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윤리를 강조한다. 김여운의 작업은 조용한 연대의 정신을 담아,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누구로 도달하게 되는가.”

《너에게로 가는 길》은 단지 타인을 향한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우리에게, 더 나아가 나 자신에게 도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 있는 것은 거창한 답변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따뜻한 손길과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다.
김여운은 그것들을 화려한 수사 대신, 한 땀 한 땀 수놓듯 꺼내어 놓는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형상, 곧 조용히 감응하고, 천천히 나아가며, 나와 너를 돌아볼 줄 아는 태도이다.

–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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