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공간, 시각적 충격과 은유가 맞물리는 서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 《망각의 혀, 타는 눈》은 욕망과 내밀한 감각을 탐구하는 작가들, 살누스, 이나래×STG, 이향일이 함께하는 전시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내러티브와 기호, 감각을 재구성한다.
망각의 혀는 잊힌 기호이며, 함축된 언어이자 이미지의 단서다. 욕망은 언제나 기호를 통해 전달되지만, 그 기호는 때로 망각되거나 억제된다. 타는 눈은 정면으로 응시하며 모든 것을 포착하지만, 그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불길처럼 번지는 감각, 강렬한 시각적 자극, 그리고 대상에 대한 탐구와 직관 속에서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탐구와 직관을 통해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하게 된다. 세 작가의 작업은 욕망과 기호가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지점에서 각기 다른 조형적 언어를 구축하며, 감각과 해석의 틈을 가로지르는 시각적 긴장을 형성한다.
이현희(기획)
살누스 <무제>
53cmx53, acrylic on canvas, 2019
살누스 <종>
53cmx53cm, acrylic on canvas, 2018
살누스 <몸 만지기>
25x25cm, acrylic on canvas, 2016
살누스는 기괴한 것에 매혹되는 시선, 사물과 이미지의 비틀림에서 발견되는 취향, 그리고 이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태도를 통해 작품을 구성한다. 그녀는 감각적 허기를 채우듯,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는 요소를 찾고, 관찰하며 변주를 통해 자신만의 시각적 언어를 확립힌다. 작가의 화면은 강렬한 색상과 절제된 터치로 이루어진다. 강한 시각적 자극 속에서도 조형적 균형이 유지되며, 금기의 영역을 조용히 응시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그녀의 작업은 관음증적인 시선과 매혹적인 유혹 사이를 오가며, 시각적 메타포를 통해 화면 속 긴장을 유도한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살누스의 <종>(2018) 시리즈, <손끝>(2018)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 개별적 오브제들은 마치 단절된 파편처럼 보이지만, 화면을 관통하는 곡선의 형태, 액체의 물성, 그리고 구슬의 매끈한 질감이 시각적 연속성을 형성하며 서로 연결된다. 개별 작품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시선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시각적 내러티브를 이루며, 관객의 해석에 따라 의미가 확장된다. 이러한 연출은 단절과 연결의 경계를 허물며, 사물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절제된 묘사와 직접적인 상징이 교차하며, 화면은 섹슈얼한 기운을 머금지만 노골적인 표현을 뛰어넘어 보다 정제된 감각을 구축한다. 살누스는 관찰자이자 목격자로서,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취향을 시각화한다. 그녀의 화면 속에서 절제와 노골적 표현이 공존하며, 세련된 색채와 담담한 터치를 통해 구축된 강렬한 장면은, 결국 시선의 문제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귀결된다.
이나래 X STG <저주받은 여자, 옹녀> 소리, MIDI X 고무나무, 혼합매체, 15“33‘, 가변설치, 2025
이나래×STG는 판소리 음악가 이나래와 건축가 박주현(STG)이 협업하여 전통 판소리의 내러티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저주받은 여자, 옹녀>(2025)는 ‘변강쇠가’의 옹녀의 이야기 중 일부분 (옹녀의 전사 > 변강쇠와의 만남 > 변강쇠의 죽음과 저주)을 은유적, 함축적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이들을 옹녀를 단순한 음탕한 여인이 아닌, 사회적 시선에 의해 왜곡된 인물로 조명한다. 옹녀의 욕망은 부정적으로 서술되고, 그녀를 둘러싼 죽음은 저주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나래×STG는 이 이야기를 해체하고, 욕망과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며, 복합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전시장 중앙에는 네 폭의 유리 아크릴 병풍이 설치되어 있다. 강렬한 반사면을 가진 이 구조물은 관람객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도록 유도하며, 작품의 일부로 작용한다. 병풍에는 옹녀의 독백이 새겨져 있으며, 판소리의 리듬을 따라 반복되는 운율 속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열다섯 살에 얻은 첫 서방 첫날밤에 잠자리에 들자마자 급상한으로 뒈져버리니 이유도 모르고 석 달 열흘을 밤낮없이 울고 또 울어도 방법이 없더라…”(이나래 <옹녀>中)
이 문장은 옹녀가 겪었던 연이은 죽음과 고난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며, 그녀가 단순한 유혹자가 아니라 피해자였음을 강조한다. 변강쇠의 죽음이 그녀에게 부여한 저주는 결국 옹녀를 향한 사회적 낙인이었으며, 그녀의 존재는 욕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거부당한 존재로 기능한다. 병풍은 이러한 복합적 시선을 반영하며, 관람객은 이 거울과 같은 구조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의 재현이 아니라, 관객을 포함한 현대적 시선 속에서 옹녀의 위치를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 된다. 이나래×STG는 소리와 공간, 반사와 서사를 교차시키며, 욕망과 낙인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품을 구축한다.
이향일 <역몽>
광목에 분채, 146x210cm, 2024
이향일 <난센스 문학>
광목에 분채, 80.5x159cm, 2024
이향일 <마술>
광목에 분채, 91×116.8cm, 2023
이향일의 작품은 서브컬처적 감각과 동양적 기호 체계가 결합된 독창적 형식을 갖는다. 화면을 가득 채운 강렬한 색감의 불꽃과 연기, 그리고 분위기를 압도하는 인물들은 기묘한 정서를 조성하며, 현실과의 이질감을 극대화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형상 표현을 넘어 다층적 내러티브를 담은 회화로 기능하며, 이는 동양화의 ‘고사인물화’ 전통과도 닮아 있다. 하나의 장면 안에 압축된 메시지를 담아내며, 몽환적 분위기를 통해 관객과 소통한다. 이향일은 한자의 동음이의어적 특성을 활용하여 변주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세상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시퍼런 봄>(2024)에서는 ‘깨달을 오(悟)’와 ‘그리칠 오(誤)’가 인물들의 얼굴에 새겨져 있으며, 이는 청춘의 방황과 갈등을 상징한다. 그는 “우리가 길을 헤매는 이 시간은 동 트는 새벽인가, 저무는 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허무와 괴로움 속에 흔들리는 젊음을 표현한다. 한자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조형적 기호로 기능하며 작품의 감각적 깊이를 더한다. 작품 속 한자는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 조형적 장치로 작동하며, 마치 불꽃과 같은 존재로 화면 위에 떠오른다. 이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동시에, 인물들에게 낙인처럼, 혹은 부적처럼 자리 잡아 강렬한 감각을 유발한다. 이향일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세상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불안과 긴장을 시각적 언어로 전환한다.
세 작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각자의 조형 언어로 그것을 재해석한다. 그들의 작업은 우리가 망각해온 감각과 언어를 환기시키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며, 감각적 탐구를 지속하도록 유도한다. 《망각의 혀, 타는 눈》은 단순한 응시를 넘어, 감각을 통해 사유하는 공간이자 시선과 기호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이다. 이제 당신의 눈과 혀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