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마르기 전에

2024.04.18 - 05.11

About

우리는 다양한 감정의 기표로써 눈물을 흘린다. 슬픔, 기쁨, 감동, 분노 등 광범위한 감정의 범위를 눈물로 표현하고, 위선이나 거짓의 경우에도 눈물은 흐를 수 있다. 눈물은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의 깊이와 다양성을 포괄하기에 우리는 상대방과의 사전 정보나 정황을 통해 눈물이 내포하는 감정을 짐작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에 의해 눈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기호가 된다. 

 

<눈물이 마르기 전에>展은 전달이 완료되지 않은 기호를 해석함에 있어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전시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판단을 통해 그 의미의 다양성과 변화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들은 기호를 단순히 해석하려 하지 않고, 다양화하고 확장하려는 시도를 통해 관객이 기호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호가 정착된 것이 아니라, 관객과 작가, 문맥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장욱

이장욱의 전시작 <The Mute Song>은 각각 우크라이나와 베트남의 민요를 다루고 있다. 영상은 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방 자막처럼 동적인 텍스트를 통해 영상 속 내용이 노래임을 짐작하게 한다. <The Mute Song #1>(2023)에서 작가는 우크라이나 국기색에 맞춘 한복을 입고, 코자크 민요인 <Там, па зяленаму гаю(연초록 숲길에서)>를 부른다. 코자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자유민 공동체로 외부 침입에 대해 자율적이며 방어적 측면을 강조했다. 현대에도 반복되는 침입과 약탈에 대해 작가는 코자크 문화를 소환하며 평화를 지지하는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The Mute Song #2>(2024)에서는 베트남의 전통 복장을 입고 민요 <hai con thằn lằn con(아기 도마뱀 두 마리)>을 부르는데, 두 마리 도마뱀이 싸우다 꼬리가 잘려나간다는 이야기는 베트남의 역사적 상황을 상기시킨다. 민요는 특정 지역이나 문화의 오래된 노래로, 각자의 역사, 전통, 신념 등을 반영한다. 그리고 세대를 거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각 문화권의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시대적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작가는 민요를 이용해 고유한 문화적 정서에 다가가고, 목소리를 잃은 노래를 통해 권력과 정쟁에 의해 전달되지 않는 아우성을 재현하고 있다. 

 

이장욱은 두 편의 영상작품을 통해 전달자로 역할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하얀 마녀(White Witch)’로 설정하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정적 인식의 마녀와 차별되는 존재로 자연력을 바탕으로 치유와 소생을 행하는 대리자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하얀 마녀로 분하기 위해 외적 변신을 시도하는데, 이 착장에 대해 “옷이라는 언어 또는 껍질을 뒤집어쓰면서 그 문화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외적 변신을 넘어 스스로의 틀을 벗어던지고, 메신저로서의 새로운 시각을 담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장욱은 주변인으로서 흔히 간과되는 목소리에 주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의 다리를 놓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ㅅㅓ

줄라이

줄라이는 그동안 깊은 영향을 준 인문학 텍스트를 시각적 기호로 옮기며 새로운 받아쓰기를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받아쓰기란 남이 하는 말이나 글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학창 시절 선생님이 불러주는 단어를 맞춤법에 맞춰가며 따라 적었듯이 말이다. 받아쓰기라는 형식은 차학경의 글쓰기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는 저서 <DICTEE>(1982)를 통해 전통적 문학의 형식을 깨뜨리는 언어적 실험을 했으며, 받아쓰기의 순차적 과정에서 생성될 수 있는 해석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 한 평론가는 “나는 당신이 무엇을 쓰는지를 조종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쓰일지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시도는 줄라이의 받아쓰기에서 역시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작가는 발화자와 수용자 사이의 간극을 인지하며 그것을 해체하고 변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받아쓰기 02: 죄와 빚>, <받아쓰기 03: 작가의 이불>, <받아쓰기 05: 수다, 리듬, 아기>는 각각 모리스 고들리에의 《증여의 수수께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리처드 브로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출발했다. 줄라이는 정보로서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더욱 극대화했다. 사실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줄라이의 자신만의 해석을 추상화함으로써 그 공간을 더욱 확장하고, 나아가 공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전환하고 있다. 작품에 반복되는 ‘다리’ 모티브는 이러한 작가의 여정과 의지를 나타내며 전통적 접근법을 넘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텍스트를 기호나 정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 흡수하고, 재해석함으로써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 한편, 작가는 자신의 저서 세 권을 해체하고, 페이지를 섞어 어느 하나의 텍스트 또는 이미지가 원래 어느 책에 속해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도록 구성했다. 이로 인해, 각 페이지는 개별적으로 자립적인 글이 되며, 관람객들은 이 낱장들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연결고리와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줄라이는 텍스트와 거리두기를 통해 텍스트가 지닌 권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언어적 가능성을 계속해서 탐구하고 확장해 나가고 있다.

허성진

허성진의 작업은 일상 속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숨겨진 규칙과 구조를 탐구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한글 자음>(2021) 시리즈에서 작가는 문자를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독립된 기호로 보며, 자음의 기본 구조를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한다. 굴뚝과 연기가 뻗어나가는 각도에서 ‘ㄱ’, 메모지를 감싸는 여백에서 ‘ㄷ’, 화장실 수챗구멍의 격자무늬에서 ‘ㅁ’, 그리고 접시에 남은 펜네 파스타에서 ‘ㅋ’을 발견해 내는 등 자음의 조형적 전환을 통해 각각의 문자는 텍스트를 넘어 독립된 조형적 객체로 재탄생한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사슴 떼가>(2022) 시리즈에서 허성진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의 도상학적 관점을 빌러 이미지가 단순한 아름다운 객체를 넘어서, 문화와 역사를 잇는 역동적인 연결 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작가는 사슴 이미지가 일반적으로 순수하고 사랑스럽게 표현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냥꾼의 전리품으로써의 역할이 부각될 때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액자는 장식적 요소로 자리하지만, 그림 속 도상으로 가득 찬 방에서는 공백으로 대체되어 관람자가 이미지와 도상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액자의 공백은 관람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와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대상의 도상화,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경계를 새롭게 탐색하고 해석한다. 


허성진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단순해 보이는 이미지나 대상들이 사실은 복잡한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하며, 주변 세계를 보다 풍부하고 다층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눈에 띄지 않는 세상의 질서와 구조를 시각화하며 자신만의 도상학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본 전시는 감정에 의해 신체적으로 발생하는 “눈물”이라는 존재가 마르기 전, 즉 감정이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순간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미술 언어의 휘발성과 영속성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조명한다. 이 순간은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았을 때, 즉 메시지가 아직 완전히 고정되지 않았음을 뜻하며, 감정과 의미가 수신자에게 완전히 자리 잡기 전, 변화와 재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눈물이 마르기 전에>展은 기호의 새로운 해석법을 제안함으로써, 관객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 감정을 바탕으로 기호의 다층적인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