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작동법

2024.03.14 - 04.06

About

선승연, 주기범 작가의 2인전 《믿음의 작동법》은 현대 기술과 무속신앙, 사회적 기억과 파편적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인지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탐색을 보여준다. 선승연의 작업은 무속신앙을 전근대적 믿음의 위치에서 벗어나 현대적 기술인 인공지능과 결합하게 하여 새로운 맥락을 형성한다. 주기범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징적 대상들이 우리의 사회적 가치와 개인적 신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보여준다. 두 작가의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회라는 체제 안에서 ‘믿음’이라는 가치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예술적 탐구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사회를 더욱 다층적으로 인식하도록 이끌고 있다.

Selected works

선승연

선승연의 작업은 무속신앙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무속신앙은 일각에서는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부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의존 대상이거나 적어도 심리적 의지처이기도 하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모해 온 믿음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무속인을 찾아 미래를 점치거나, 특정 물건이나 자연물을 신성화하고 좋은 기운을 찾기 위해 지역이나 날짜를 점쳐본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관습이 여전히 전승되며 남아 있는 것이다. 작가는 무속신앙을 현대 과학기술의 정수인 인공지능(AI)과 접목시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영상 작업은 화려하고 복잡한 그래픽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매끄러운 영상과는 구별되는, 어딘가 약간 비틀린 중첩된 화면을 연출한다. 작가는 AI를 통해 무속신앙의 요소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이성과 비이성, 미신과 믿음 사이의 세밀한 경계를 탐구한다. 

<Gut Choice>(2023)는 ‘네슐린 실피’라는 가상의 디지털 무당이 주인공으로 나타나 조상을 불러내고 굿을 하는 영상작품이다. 무당은 이 행위가 ‘제사’라 명명하지만 전체적인 연출과 몸짓을 통해 굿에 더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무속에서 조상의 존재는 매우 추상적이다. 사후에 공동체에 의해 신격화되거나 선녀, 동자, 할머니 등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유일한 존재도 아니며 다수가 되거나 중간에 바뀌기도 한다. 그 존재는 유일신처럼 체계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지만 그에 대한 믿음은 사회적 가치가 향하는 바에 따라 생성된다. 조상에 대한 관계적 믿음이나 존경받는 인물의 영웅적 성격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실피의 조상은 누구일까? 작가는 디지털 무당을 만들며 Chat GPT라는 대화형 인공지능의 도움을 얻었다. 사이버 세계와 일종의 접신을 하며 디지털 무당에게 이름을 내려준 것이다. 그렇다면 실피의 조상은 현실 세계의 개발자일까, 아니면 그 이전 버전의 AI일까. 작품은 디지털 세계와 전통 신앙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실제와 가상, 과거와 현재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AI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현실 세계는 정교하게 짜인 디지털 세계, 초월적 믿음에 의해 생성된 신앙적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만 각각의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디지털 세계와 신앙적 세계는 대척점에 있을 것 같지만 이 연결 가능성 역시 확언할 수 없다. ‘네슐린 실피’가 언급한 조상의 정체가 인간 기준의 신인지, 그들만의 신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선승연 작가는 오류에 의한 픽셀의 분절 속에서, 그 틈새를 통해 새로운 믿음이 작용할 수도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주기범

주기범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징적 대상들의 회화적 재해석을 통해 사회적 가치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개인의 행동과 신념에 영향을 주는지 탐구한다. 작가는 각종 동상, 비석, 새마을 깃발 등 도시에 존재하는 모뉴먼트를 기록하면서 이념, 종교, 권력의 증거로 남아있는 이 상징물들이 어떻게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시선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방치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보여준다. 통시적 시선으로 이들을 소환함으로써 주기범은 새로운 회화적 담론을 생성하고 있다.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한국 근현대사는 사회, 문화적으로 압축된 양상을 보인다. 그 결과 세대, 지역, 성별에 따라 다양한 가치관과 믿음이 생겨났으며, 그 과정에서 생성된 다양한 기념물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 곳곳에 잔존해 있다. <율동하는 새싹>(2019) 속 새마을 깃발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적 갈등을 암시한다. 우뚝 솟아 나부끼는 깃발은 그 이상의 상징성과 해석을 낳게 된다. 누군가는 향수나 영광을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또 누군가는 인식조차 못 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중 일부로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여전히 우뚝 솟아올라 있다.

 <지금 여기 모인 그때>(2023)는 만화와 같이 컷 분할된 캔버스에 각기 다른 장소와 시기의 영웅상(맥아더, 문숙공)과 토착신(해태, 지하여장군)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자신의 산책길에서 풍경을 기록하고, 어떤 모티브에 의해 이것을 다시 소환, 재조합하곤 하는데, 어느 날 인천 자유 공원에 우뚝 선 ‘맥아더 장군상’이 작가에게 새로운 이미지적 영감을 주었다. 분할된 각 화면은 단절되어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통하며 우리의 믿음이 향할 다음 지점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어쩌면 <바래진 1-45>(2019)에서 보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성시되는 것은 역시 일확천금일지도 모른다. 그의 철저히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며 믿음이라는 본질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그동안 주기범의 회화는 일상과 기억을 주된 모티브로 해왔다. 흐려진 화면을 감싸고 있을 시간의 축적을 담는 일종의 회화적 실험이었다. 화면의 분할과 반복적 구성을 통해 그는 회화가 담는 단일한 시간성이나 서사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우리가 믿고 따르는 가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주기범의 회화는 우리가 공간과 시간을 인지하는 방식에 도전하며, 일상과 역사의 단절된 시간 속 놓치기 쉬운 맥락을 연결함으로써 다시금 탐색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리 주변의 공간과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미술의 기원을 동굴벽화에서 찾는다면 이때의 예술가는 일종의 주술사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술사가 인간에게 신의 영역을 재현해 주었다면 두 작가는 그 영역의 해체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믿음’이라는 개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재현해 내는 것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때로는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 신념과 가치가 어떻게 우리의 행동과 인생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관계이다. 선승연과 주기범의 예술은 과거와 현재, 물질과 신성,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경계들이 어떻게 우리의 인식과 신념 체계를 구축하는지를 연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믿음’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둘러싼 우리의 이해와,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현희(기획)

Exhibition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