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화된 형태로 나무, 화가, 새, 소녀 등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반복해 등장하며 도상학적 기호와 함께 서사적 화면을 구성한다. 이지수는 이 요소들을 자신의 내적 요소이자 스스로를 담아내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화면을 구성하며 작가는 스스로에게 알쏭달쏭 한 질문을 던지는데,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는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스스로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지수의 작품은 자서전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작가가 구축하는 이야기는 연대기나 사건과 같은 사실적 결과가 아닌 자신의 생각, 취향, 기억, 상상 등 다양한 요소에 기인한다. 화면 속 요소는 각각 다른 내면의 발화이자 파편적 이야기지만 상호 영향을 주며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이지수는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이야기가 아닌 조형적 서사를 통해 자신의 심리적 실체와 삶을 구성하는 원리에 주목한다. 이지수의 작업은 내면의 조각들을 “돌보기”라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돌보기는 특정 목적의식이나 변화를 지향하기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행위이다. 이는 무관심한 관찰자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개입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이다. 이지수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내면의 조각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다룬다. 이러한 돌보기의 과정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그 내러티브는 다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물(Homo narraticus)’로 명명하며, 서사적 사고와 내러티브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브루너의 이론에 따르면, 이지수는 자신의 내러티브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작품 속 인물과 기호로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브루너는 서사적 사고가 인간의 경험을 조직하는 기본 단위라고 보았다. 이지수의 작업은 이러한 서사적 사고를 통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관객에게도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투영하도록 유도한다. 어떤 인물을 주제로 하더라도 이야기를 구축하는 요소, 방식, 구조는 누구나 다르다. 이지수는 기억, 감정, 상상 속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소환하는데, 자신에게 영향을 준 문인, 예술가, 사회적 위치, 불안감 등 다양한 요소가 인물로 각각 그려진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는 곧 내러티브 정체성 형성이 단순히 일상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브루너의 상상력과 창의성 이론에 빗대어 보자면, 이지수의 작품은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전시명《homesick》을 해석하자면 향수병, 일반적으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단어이다. 독일 유학을 했던 작가의 경험을 대입해 본다면 타지에서 느낀 집에 대한 그리움일까 짐작할 수 있겠으나, 이지수가 말하는 향수병의 대상은 어디인지 모를 곳에 존재하는, 아니 존재조차 확신할 수 없는 그런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힌트는 작년에 있었던 전시 《somewhere nice》에서 찾을 수 있겠다. ‘어느 멋진 곳’이란 현실적으로는 누구나 목표하는 지점이나 상황일 수도 있고, 혹은 사후세계에 대한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결국 환상의 파편에 가깝다. 작가는 이 막연한 장소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자신만의 지표를 그려내며 관객의 동참을 끌어낸다.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욕망의 세계이고, 내밀하게 느끼는 무의식적 감각의 세계이다. 이야기하고 싶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기는 조심스러운 내밀한 감정의 지점 속에서 작가의 나침반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그동안 이지수는 작품의 주된 모티브가 되는 인물들을 같은 테이블에 앉혀놓았다. 가족이나 친구가 마주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인물들은 각각의 시공간에서 소환된 듯 독립적으로 존재했었는데, 신작 《Going home》에서는 비를 맞으며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이들이 여전히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각기 다른 작품을 통해 손을 마주하고, 함께 비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작가의 방향성은 현재도 정착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지수는 그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내적 존재를 돌보며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주창하지도 않지만, 거리감을 두는 관찰자도 아닌 따스한 돌봄의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과 이를 이루는 주변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이지수의 작업은 자서전적 서사를 통해 작가 자신과 관객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지수는 작품을 통해 내면의 조각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보며, 이를 통해 자신의 내러티브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관객과의 깊은 교감을 시도해 나간다.
이현희(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