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VISIBLE

2025.05.09. - 05.31.

보이지 않더라도 감지할 수 있는 신호들이 있다. 공기 중에 스며든 향이 촉발하는 세계,
흐릿한 시선 너머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관계와 인식, 반복되는 욕망의 낮은 숨결.
이와 같은 징후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인식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흔들리며 우리의 세계를 구성한다.
《IN VISIBLE》은 이처럼 감지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감각의 층위,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미세한 진동들을 따라간다. 

 

이 전시는 두 겹의 감각—가시적인 것과 그 안에 머무는 비가시적 기척—의 경계에서 출발한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적 흔적들을 불러낸다.
이들의 작업은 인식의 여백 속으로 확장되며, 침잠된 신호와 구조를 서서히 드러낸다.
마르셀 뒤샹이 언급한 ‘무한히 얇은 차이’, 앵프라맹스(Inframince)의 개념처럼, 존재와 부재,
현실과 환상 사이에 머무는 미세한 감각들이 이 전시의 결을 이루고 있다.

 

배인경

배인경 <가장 적합한 아바타 만들기>

멀티미디어HD 컬러영상, TV, 텍스트, 책, 2025

배인경의 《가장 적합한 아바타 만들기》(2025)는 작가가 쓴 SF 소설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봉천동이라는 서울의 익숙한 동네에 갑작스레 등장한 은하계 환승터미널은, 현실의 공간 위에 허구를 덧입히며 ‘나’와 ‘타자’를 가르는 경계의 인위성을 탐색한다.
작업은 유쾌한 판타지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현실의 구조적 차별이 교묘하게 얽혀 있다.
관객은 제3의 외계 존재로 상정되어, 두 은하계를 보다 ‘쾌적하게’ 여행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아바타를 생성하는 단계에 진입한다.
이 설정 아래 드러나는 피부색, 몸무게, 언어, 억양, 발음 등의 기준들은 사소한 차이를 근거로 폭력을 정당화해온 사례들을 은유한다.
배인경은 결국 우리 사이의 차이라는 것이 얼마나 종잇장처럼 얇으면서도,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해왔는지를 되묻는다.
허구의 세계를 통해 작가는 냉혹한 현실의 구조를 거울처럼 비춘다.

송주형

송주형 <유령바위 좋을시고(’영월기행_안녕+하늘, 땅, 우리’커미션)>
2채널 영상(2160*3840), 2채널 사운드, ed 1/10(10+A.P.1), 아크릴 시트에 UV프린트, 가변크기, 2024

송주형의 《유령바위 좋을시고》(2024)는 강원도 영월의 ‘술샘설화’를 바탕으로, 불씨를 둘러싼 반복되는 욕망과 지역의 지형, 기억을 감각적으로 엮어낸다. 
양반과 상놈의 위계, 신령한 술샘의 파괴, 스스로 불타는 유령바위의 발견과 채굴의 이야기는 땅과 사람의 기억을 통해 이어져 왔다.
작품은 민요 형식을 차용한 노랫말과 다소 서늘한 영상의 호흡을 통해, 망각과 재앙, 탐욕과 회한이 어지럽게 얽힌 시간을 그려낸다.
불씨는 삶을 타오르게도 했지만, 결국 산천을 병들게 한 이중적 기호로 작동하며, 성장과 쇠락을 동시에 태워낸 흔적이 된다.
“하늘땅의 덕이로다”라는 후렴은 땅을 딛고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을 노래처럼 잇는다.
삶과 죽음, 축복과 경고가 겹쳐진 목소리는 화면 위를 흐르는 어둠과 잔열 속에서 천천히 반향하며,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유령바위의 형상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끝내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남아, 관객을 그 앞에 다시 서게 만든다.

오인석

오인석 <탄생제>(상) pen on pannel, 530 x 460(mm), 2014

<바다의 끝에서>(좌), <고래의 바다 세계수의 신>(중), <Coralian>(우)

pen on pannel, 245×335(mm), 2013

오인석 <오르트 구름 진실의 눈> pen on pannel, 200 x 297(mm), 2017

오인석 <해랑화> perfume

오인석 <시각의 틈>(좌), <오인석 <순환의 고리>(우)

pen on pannel, 310 x 440(mm), 2014

오인석의 작품은 향과 드로잉이라는 서로 다른 감각의 결을 겹쳐, 의식의 바깥에서 감지되는 어떤 움직임을 불러낸다. 
작가가 조향한 향수 ‘해랑화’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피어나는 꽃에 대한 상상을 담고 있다.
파도에 꽃이 피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거짓말처럼 달큰한 향이 몸을 감싸는 순간 그 믿음은 흔들린다.
고요한 파도 바깥에서 흘러나오는 탑노트, 물방울처럼 흩어지는 미들노트, 바다의 끝에서 맺히는 꽃의 잔향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세계의 층위를 따라 퍼져 나간다.
함께 전시된 펜 드로잉은 촘촘한 선의 축적을 통해 심연의 생명, 흐름, 기억되지 않은 시간의 잔존을 불러내며 무의식의 문을 열고, 그 너머의 세계로 관객을 천천히 소환한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신호, 냄새처럼 번지는 인식의 가능성은 작가가 응시하려는 세계의 가장자리에 도달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

원나래

원나래 

<플로리다 뷰티그린>, <박쥐란>, <호야 서펜스>, <시조바시스 인트리카타>

장지에 아크릴채색, 112×112cm, 2024

원나래의 작업은 잘 가꿔진 식물의 이미지, 그 곁을 다듬는 배경의 손길,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는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단정하고 미감 있는 회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엔 ‘누가 무엇을 위해 가꿨는가’라는 기이한 침묵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식물의 초상을 빌려, 보여지기 위해 길러지고, 배치되고, 보정된 존재의 위태로운 균형을 그려낸다.
화면을 채운 붓의 터치들은 인테리어 소품처럼 소비되는 자연물 위로 밀려드는 비가시적인 시선을 감지하게 한다.
마치 형상을 돋보이게 하려는 듯한 이 터치들은, 실은 점차 대상을 압박하며 그 자리를 잠식한다.
그 과정에서 주체는 흐려지고,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위치는 뒤섞인다. 우리는 그 풍경 앞에서 누군가를 꾸미고, 동시에 꾸며지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식물은 온전히 식물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연출하는 듯한 형상으로, 타인의 기호를 흡수하며 어딘가에 끼워 맞춰진다.
우리는 결국 그 긴장 속에서, 위태롭지만 끊임없이 피어나고 있는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감각과 잔존하는 구조를 호출하고, 잠식된 질문을 던진다.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존재와 부재, 관찰과 대상화, 기억과 망각 사이에 남겨진 감각의 여백을 탐색하고, 그 여백을 통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되묻는다.
《IN VISIBLE》은 결국, 보이지 않음이 사라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미세한 진동이야말로 세계를 다시 감각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질문으로 남긴다.

이현희(기획)

Exhibition View

Opening Rece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