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은 가족을 통해 다양한 종교를 접했고, 여러 교리와 상징들이 하나의 ‘믿음’으로 굳어져 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언제나 확고한 진리라기보다는, 때로는 유연했고, 때로는 버릇처럼 반복되며 지속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믿음의 외형—부적, 성화, 제단, 고해—만이 남았고, 그 안의 실질은 점점 엷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빈자리에 작가는 말을 건넨다.
《타락상점》은 그 엷어진 믿음의 껍질과, 여전히 남은 갈망 사이의 공간을 유머러스하게 탐색하는 전시다. 종교적 도상과 키치한 오브제, 낮은 가격의 상품성과 높은 상징성이 뒤섞인 이 세계에서, 타락은 믿음의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지속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믿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얼굴로, 다른 방식으로 계속 반복될 뿐이다. ‘타락’은 흔히 이상으로부터의 추락, 혹은 본질의 훼손을 의미하지만 이 전시에서 말하는 ‘타락’은 믿음의 외피가 벗겨진 상태, 혹은 믿음이라는 행위 자체가 작동하는 기이한 욕망의 장(場)을 가리킨다. 이 타락은 구원을 전제하지 않으며, 회복이나 정화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지속되고 남아 있는 믿음의 또 다른 얼굴, 혹은 버려졌지만 여전히 기능하는 잔여물에 가깝다.
김서현이 다루는 이미지들은 종교가 정립해온 권위의 틀과, 그 틀에서 밀려난 것들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경계, 즉 신성과 통속, 고결함과 욕망, 구조화된 믿음과 즉흥적인 염원의 간극에서 타락의 이미지를 긍정한다. 그녀는 미술의 정교한 테크닉이나 권위 있는 도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키치적 표현, 값싼 재료, 상품화된 종교 이미지들로 오히려 현대의 믿음이 실재하는 장소를 추적한다. 다시 말해, 이 ‘상점’은 퇴폐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 흘러넘치는 장소, 다만 그 믿음이 더 이상 고결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비틀린 경건함의 상태에서, 우리는 여전히 기도하고, 모으고, 진심을 섞는다.
<Saints & Sinners Supply>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5
<Missing god project> 사진인화, 각 29x42cm, 2025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설치작업 <Saints & Sinners Supply>(2025)는 믿음의 잔재들이 한 데 모인 제단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종종 떠올리는 정제된 종교적 공간과는 전혀 다른, 과잉되고 거친 물성과 조악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단이다. | 마치 삼단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여 있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것은 정교한 조각이 아니라 조악한 오브제들이다. 소쿠리, 종이 레이스, 부처, 성모상, 플라스틱 꽃, 어린 시절 교회에서 받은 상장, 그리고 부활절 달걀의 형태를 빌린 남성용 자위기구까지 겹겹이 쌓이며 어디선가 본 듯한 ‘의례’의 잔해를 암시한다. 그 오브제는 불경을 노리는 조롱이 아니라, 우리가 ‘성스러움’이라고 부르는 것의 외형이 얼마나 쉽게 반복되고,다른 기능과 결합되는가를 보여주는 장치다. 이 설치물은 믿음의 잔해들이 모인 하나의 박물관이자 쓰레기장 같은 제단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제단을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그 무질서 속에서 신앙의 구조, 현대적 기복의 태도, 종교가 소비되는 양상을 시각적으로 흘려보낸다.
그 뒤에 보이는 <Missing god project>(2025)는 실종신고 전단지의 형식을 빌려 우리 시대의 신적 존재들을 호출한다. ‘석가모니’, ‘예수’, ‘산신령’, ‘제우스’, ‘삼신할매’ 등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이 있는 신들은 마치 실종된 애완동물을 찾는 전단처럼 묘사되는데, 그 실종 사유는 기묘하게 현실적이다. 석가모니는 템플스테이 체험관에서 사찰음식 먹방을 하다 실종되고,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했던 예수는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발언 후 공격받고 잠적한다. 이 작업의 중요한 점은, 여기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미지를 작가가 AI로 생성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신을 형상화한 미술은 높은 기술과 신성에 기반해 제작되어야 했고, 그것이 예술의 권위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신은 알고리즘에 의해 단 몇 초 만에 생성된다. 신의 이미지가 이토록 쉽게 재현되고 유통되는 시대, 신들은 더 이상 특정 교리를 수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매체와 알고리즘, SNS 팬덤, 체험 산업 안에서 존재하는 기호에 가깝다. 김서현은 이런 신들의 실종 사유를 나열하면서, 우리 사회가 정작 무엇을 믿고 기대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비대면 고해성사실>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4
<돈의신 그리 마냥> 혼합매체, 120x60x15cm, 2025
이 전시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층위는 ‘성(聖)’과 ‘성(性)’의 이중적 작동 방식이다. 성스러움은 종교의 핵심 감각 중 하나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자 침묵과 금기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이 성스러움의 금기는 종종 성(性), 즉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과도 긴밀히 맞닿는다. 종교는 성적 욕망을 통제하고, 그것을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타락의 증거로 간주해왔다. 김서현의 작업은 이 두 ‘성’이 나누는 위계와 금기를 거침없이 비튼다. <현대의 성(sex)화>(2024)에서는 가정용 성화 위에 사적인 드로잉을 겹쳐 그려 성스러움의 도상을 감정과 욕망의 표면으로 바꾸고, <비대면 고해 공간>(2025)에서는 성인용품으로 장식된 정체불명의 인형 앞에서 고해의 행위를 유도한다. 모두 한때 경건함을 담아내던 형식들이며 동시에 욕망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하지만 이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통제되지 않은 형식으로 탈바꿈한다. 이때 타락은 이 둘을 구별짓는 위계를 무너뜨리고, 그 경계 위에서 새로운 기도의 형식을 제안한다. 이는 종교 의례가 얼마나 쉽게 재현되고, 얼마나 손쉽게 소비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편 <돈의 신 그리 마냥>(2025)에서는 형광색 인형이 십 원짜리 동전을 좇고 있다. ‘부자집에서만 나왔다던 돈벌레가 이제는 가난한 집에서도 출몰한다’는 속설처럼, 작가는 믿음의 작동이 더 이상 위계에 의존하지 않고, 반복되는 욕망의 움직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보여준다.
이처럼 《타락상점》은 종교적 경건과 예술적 권위를 모두 가볍게 탈각시킨 채, 이 시대에 우리가 여전히 집착하는 것들—신, 돈, 향, 사랑, 자기위안—을 하나의 혼종 제단 위에 펼쳐놓는다. 타락은 그 이름처럼 자유롭고, 진실하며, 노골적이다. 포장되지 않은 상태의 기도이자 희망이며, 때때로 조롱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서현은 이 타락의 이름 아래에서, ‘정결함’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어온 것들의 진실을 열어젖힌다. 김서현의 《타락상점》은 완성된 메시지나 분명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의 재료들이 무엇인지, 믿음이 어디까지 미술이 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과정에 가깝다. 작가는 ‘믿음이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고 말한다. 이 전시는 질문이며, 제단이며, 반쯤 무너진 성소이다. 믿음은 여전히 타락 중이고, 타락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이현희(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