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유희
2025.09.12 – 10.02
이번 전시는 각기 독자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던 세 작가의 작품들에서 발견된 공통의 맥락을 토대로 기획되었다.
마치 각본가가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써 내려가듯 작가들의 작업 자체가 전시의 서사를 끌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세 작가들의 작품이 ‘유물’의 형태와 형식을 하고 있다는 점과 작업의 성격이 고고학의 방법론 혹은 그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기획이 시작되었다.
고고학은 유적, 유구, 유물 등의 물질적 흔적을 통해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과거 인간의 삶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전시 제목 고고학 유희는 헤르만 헤세의 노년의 역작 「유리알 유희(The Glass Bead Game)」에서 따왔다. 고고학자와 같은 자세로 물질문명을 통해
인간의 삶의 흔적을 탐구하며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해 가고있는 3인의 작가의 작업을 통해 그 관통하는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하였다.
연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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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백 작가는 이주와 철거 현장에서 수집한 도시의 삶을 드러내는 일상적 사물을 매개로 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는데,
근대유물적 물질 위의 세월의 층위를 벗겨내며 그곳에 스며있던 인간의 생활사에 다가간다.
도배지를 한켜 한켜 벗겨내어 재구성하는 작업이 그랬고 70년대 주택을 해부한 역촌동 프로젝트가 그랬다.
특정 공간에 축적된 삶의 흔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하는 그의 작업은 고고학이 발굴을 통해 층위학적, 연대학적 정보를 얻어가는 방식과 닮아있다.
이번 전시에는 김종영 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였던 수집한 목제가구를 태워 나무의 층과 결을 드러낸 작품을 보여준다.
이는 조각가 김종영의 ‘깎아내는 행위’를 넘어선, 조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조각을 드러내는 독창적 미학 ‘不刻(불각)’에 대한 비평적 계승이자,
물리적 표면을 벗겨내며 그 안에 쌓인 시간성과 기억을 드러내던 기존 작업의 또 다른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주세균
주세균 작가는 디지털 환경에서 떠도는 이미지와 기호를 수집해 다시 조합하는 작업을 해왔다.
국기, 전통 유물, 저해상도의 인터넷 이미지 등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뒤틀며 우리가 당연히 여겨온 권위와 규범을 흔든다.
특히 그는 고화질 원본보다 저화질 데이터 이미지를 활용하여, 손실, 결핍된 부분을 직관과 경험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각 경험을 창출한다.
특히 ‘국보’라는 물질문명에 주목하여 ‘전통’ 혹은 ‘보물’이라고 부르는 가치를 변형하고자 하였다.
한국 전통 도자기 이미지나 박물관 유물 이미지를 현대의 맥락에서 다시 구성하며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소비와 변형 방식을 반영한다.
최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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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철 작가는 본격적으로 발굴 현장을 재현한다.
기후, 환경, 도시, 현대사회에 관심을 두고 이들의 관계와 작용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해 온 작가는 고대 유물의 형상을 설탕으로 재현하며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설탕이라는 재료를 통해 문명의 달콤하고 화려한 겉모습과 그 뒤에 감춰진 덧없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은 과거와 현재,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지점을 성찰하게 하는데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문명의 그것처럼 우리가 시간 앞에서 영원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그의 작업은 멈출 수 없이 치닫는 도시 문명 개발에 대한 문제점과 시간성을 투영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속절없이 녹아내리고 우리는 문명이 남길 흔적과 기억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유물이라는 유사한 소재를 채택하였지만 서로 다르게 접근하는 이들의 작업이 한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소통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 받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Exhibition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