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나 돌 같은 재료를 직접 깎고 다듬는 조각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작업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아온 이상윤은 재료의 물성과 손을 통한 제작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겨 왔다. 그에게는 하나의 물질이 다른 형상을 갖추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동, 그리고 그 과정에 축적된 사유까지도 작품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이상윤의 이전 전시 《Time, Carving》의 ‘깎기(Carving)’가 물질을 덜어내며 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전시 《돌고 돌고 돌고》의 ‘주조’는 물질을 채워 넣으며 형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두 방식 모두 이상윤에게는 단순한 조각적 기술이 아니라 물질에 시간이 개입하고 중첩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조각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두 층위가 공존한다. 하나는 ‘물질을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매우 조각적인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삶에 대한 관심이다. 작가에게 ‘주조’는 오랫동안 매혹되어 온 조각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은유다.
이십여 년 전 조각의 길에 처음 들어섰을 때 마주한 낡고 무거운 주물 회전대와 그 표면에 희미하게 남은 글자들은 그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인상으로 남았고, 규격화된 폰트가 아닌 닳고 마모된 표면에서 그는 완벽하게 정제된 사물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이상윤이 말하는 ‘규율(規律)’과 ‘기율(紀律)’의 차이에서 조금 더 선명해진다. 그에게 규율이 이미 정해진 기준과 법칙에 사물을 맞추는 것이라면, 기율은 그 기준을 이해하면서도 변화하는 물질과 조건에 맞추어 매 순간 적절한 질서를 찾아가는 판단의 과정이다. 그가 삐뚤어진 주물 글자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규격의 정확성보다 손과 눈으로 판단하며 만들어낸 고유한 질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탐구의 연장선에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전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떠내어 재현한다. 원본의 회전대가 누운 채 여전히 도구로 존재한다면, 새롭게 주조한 회전대들은 세워져 조각으로 거듭난다.
전시 제목 《돌고 돌고 돌고》는 전인권의 노래에서 가져온 것이면서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물리적·철학적 구조를 동시에 지칭한다. 작가에게 시간은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는 만큼 또 오는 것, 즉 회전”이다. 그리고 이 ‘회전’은 관념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물성과 제작 과정 전체에 반복된다. 조소 회전대는 둥근 원형이고, 흙을 섞는 나무통은 돌며, 숫돌바퀴도 돌고, 네 개의 체도 회전하면서 흙을 걸러낸다. 흙은 주물의 형태를 만들었다가 부서지고 다시 통으로 돌아가 다음 주물을 만든다. 물은 숫돌바퀴를 따라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쇳물은 액체에서 고체가 된다. 이처럼 작가는 주물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전시의 장면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에서 생성과 소멸은 서로 대립하는 끝과 시작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안에서 이어지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 순환의 감각은 어느덧 작가 자신의 삶을 향한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은 늙고, 물질은 닳고 형상은 허물어진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고, 끝난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또 다른 시작이 생겨난다. 《돌고 돌고 돌고》는 작가 이상윤이 오랫동안 매혹되어 온 재료의 물성과 조각의 과정에서 길어 올린 시간, 그리고 삶에 관한 사유를 관객과 나누는 전시다. 여기에 전인권, 킹 크림슨(King Crimson), 캔자스(Kansas), 밥 딜런(Bob Dylan), 정태춘, 닐 영(Neil Young),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노랫말은 작가의 사색을 대신하는 언어로 사용된다.
글. 황규진(artspace LAF 전시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