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

BLUE FLAME

2024.02.15 - 03.02

About

“어지럽던 푸른빛은 화려해져 손 데일만큼 뜨겁도록 타올라 더 경계를 넘어 펼쳐지는 unknown 저 끝까지 무료했 던 날이 제법 아름다워 타오른 이상 멈출 수는 없어 my desire”

아트스페이스 라프의 ‘2024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인 《Blue Flame》은 젊은 작가들의 불타는 열정과 무한 한 잠재력에 대해 주목하는 전시로 아이돌 그룹 르 세라핌(LE SSERAFIM)의 데뷔 앨범의 수록곡 제목을 차용했다. 연말 이면 수많은 학생들이 졸업전시와 함께 학교를 나선다. 4년 동안이라는 긴 시간을 졸업 전시라는 찰나의 순간에 보여줘 야 하는 자리인 만큼 전시장은 뜨겁고 들끓는 공간이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에 닿기 위해 부단히 노력 하는, 차갑고 시니컬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작품에 열정적인 젊은 작가들의 모습은 blue flame 자체로 보였다.

특히 참여 작가 3인(강승호, 김수빈, 심경아)은 일상에서 자신의 취향을 살피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는 방식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강승호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작업하며 권력 구조, 세대론을 다룬다. 끊임없이 욕망하지만 무기력한 개인을 담기 위해 하수도를 기어 들어가는 작가의 모습은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김수빈은 텍스트 를 기반으로 작업하며 텍스트의 절대성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 지식을 생성한다. 지식 생성의 주체로서 작가는 언어유희, 한계적 세계관의 설정 등을 통해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심경아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담고 그것을 회화라는 물질의 세계로 붙잡아둔다. 그의 작업을 보면 ‘꽃 같던 시절의 빛’을 의미하 는 화양연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향한 믿음”이라는 작가의 태도는 단순한 기록의 매체로 서의 회화가 아닌 믿음과 희망의 매체라는 다른 시각으로 작품에 접근하게 된다.

전시를 준비하며 많은 대학교의 졸업 전시를 봤고, 다양한 형태의 불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특정 대상을 분류하고 선별하는 작업은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다. 속 편하게 무한 열정을 강요하거나 그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어 희화하며 날선 비판을 하기보다는 아이돌을 응원하는 하나의 팬덤이 되어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도 했다. 이들의 서슬 퍼런 불꽃이 어떻게 발화할지 누구보다 기대하게 되었다. 전시에서 전부 다룰 수 없었지만, 다양한 불 꽃을 지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여정을 응원한다.

한지현(큐레이터)

Selected works

강승호

작가는 자신의 실제 생일날 케이크를 들고 하수도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생일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지인에게 전화로 생일 축하를 받고, 케이크를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를 보인다. 하지만 하수도라는 건축적인 공간에 의해 일상성은 탈각·각색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작가는 처량하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강승호는 하수도라는 건축적인 요소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함, 권력의 구조, 세대론을 다룬다.

 

하수도는 사용한 오폐수가 흘러가도록 만든 설비로 신체 기관 중 ‘항문’이 갖는 역할과 형태적인 유사성을 갖는다. <:o scopy>는 이점에서 착안한 작업이다. 작가는 하수도를 항문으로 상정하고 그 안을 촬영하는 것을 ‘대장 내시경(colonoscopy)’에 비유하며 하수도 내부를 탐색한다. 어떻게 보면 어둡고 더러운 공간인 하수도지만, 건축을 이루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다. 비천하다고 여겨졌던 공간은 권력과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한 도시 체계 중 일부인 것이다. 그렇기에 <:o scopy>에서 개인은 무력해 보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비친다. 견고히 짜인 권력 구조 속에서 체제를 전복 시키거나, 다시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하수도의 기능을 상기해 보자. 작가는 하수도가 갖는 ‘배설’이라는 기능에 관심을 갖는다. 비좁은 하수 도관에서 전화를 하고, 케이크를 먹고, 무언가 쓰는 일련의 행위들이 일종의 배설로 읽히는 이유기도 하다. 하수도에 존재·실존하고 있는 작가는 배설하는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버려진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버려지고, 무용한 존재는 카메라에 담긴 구도와도 관련 있는 듯하다. 카메라 앵글에 전면으로 등장하는 작가 상반신 외에 화면에서는 어떠한 신체가 있고,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과 불능감은 전화 통화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뭔가 불확실 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내가 나중에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내가 뭔가 엄마 아빠처럼 그런 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난 못 할 거 같아.” – <:o scopy> 중

 

케이크를 먹는 장면에 삽입된 부모님과의 통화 내용에서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불능감’과 불더불어 닿을 수 없는 욕망을 하수도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배출한다. 환대와 환영, 축하의 의미를 갖는 케이크는 작가가 플레이 했던 게임 ‘포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는다. 게임에서 케이크는 스테이지 보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먹으면 죽는다. 일반적인 게임을 클리어하고 얻는 보상과 성취감 같은 것은 없다. 포탈의 엔딩이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불능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게 아닐까한다. 포탈의 앤딩곡인 ‘still alive’를 영상에 삽입함으로써 작가는 젊은 세대들이 세상을 향해 느끼는 허무함, 무력감, 냉소적인 태도를 강화 시킨다.

김수빈

“너와 내가 만나 세상을 이루지만 서로를 위한 삶은 없다.” – 작가 노트 중

 

작품 <무제>에서 티 테이블 위에 놓인 세 잔의 찻잔은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한다. 마치 같은 대화를 나누지만 이야기는 겉돌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서로를 위한 삶”은 없다. 매끈한 원형의 찻잔을 타고 언어들은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작업은 유리된 우리를 개념화 시키고 계속해서 미끄러자고 파편화될 수밖에 없는 타인을 떠오르게 한다.

 

김수빈은 지식과 진리를 전하는 오랜 도구이자 매체인 텍스트를 근간으로 작업한다. 진리의 매체로 여겨진 텍스들은 작가에 의해서 전복 당하며 때로는 흐트러진다. 작가는 “상식 헤집기”, “텍스트 결집”, “낯설게 하기”, “한계적 세계관” 이 네 가지 방식을 통해 텍스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지식을 생성한다.

 

작가는 지식 생성 주체로서 자리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공유지식은 절대적이지도, 고정 불변하지도 않다. 작가가 선택한 타자기로 인쇄하는 방식은 지식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타자기의 기계적이지만 수정 불가능함은 불완전한 사고와 맞물리며, 텍스트 안에서 리듬과 운율을 발생시킨다. 텍스트의 운율감은 곧 벽에 걸린 작품들의 간격, 높낮이, 크기에 의해 반복된다.

 

작가의 의도적인 텍스트 배열과 소거 작업, 박제된 액자를 도식적으로 병렬하는 작업은 언어적인 요소를 넘어 어그러진 감각을 전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후원하기>는 인터넷의 후원 배너 문구를 작가가 일부 소거하며 정제한다. 작품 하단의 “후원하기”, “확인 후 닫기”, “다시 보지 않기”는 작가가 말하는 “연민이 빚어내는 비양심적인 집착”을 드러냄과 동시에, ‘후원’ 체계가 갖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 <살기>에 등장하는 문구 “긍정적으로 살기 / 살기”는 ‘살아간다’는 의미와 ‘살기(殺氣)’라는 다중의 의미를 내포한다. 진부한 문장은 고착된 하나의 의미에서 벗어난다. 기표와 기의는 1:1로 대응하지 못 하고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오히려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텍스트를 받쳐주는 지지대다. 그는 고품질의 종이에 타자기로 텍스트를 기입하고 액자에 가두어 텍스트에 권위와 작품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한다

심경아

심경아는 붙잡고 싶은 기억과 감정을 필름 카메라로 포착 후 현상된 사진을 회화라는 물질의 세계에 붙잡아 둔다. 작가가 촬영한 사진 은 피사체들이 ‘거기 있었음’, ‘그것이 존재했었음’에 대한 확신이자 기록의 매체다. 이는 캔버스라는 지지체 위에서 행해지는 작가의 붓 질을 통해 다시금 재현된다. 이렇게 그려진 회화는 대부분 밤의 시간을 담는다. 어둡고, 조용한 밤이 아니라 주변인들과 함께 보내는 즐 거운 시간. 낮보다 더 찬란한 밤의 시간들이다.

 

“반짝였던 것을 더 빛나게 그리고 부드러운 것을 더 풀어지게 그린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진에 담긴 빛 번짐을 더 부각해서 짧고 강 렬하게 그리고, 피사체들은 좀 더 느슨하게 재현한다. 가벼운 붓터치로 소환된 대상들 위에 에어브러쉬로 덧입혀 어렴풋하고, 아련한 느낌을 더한다. 이런 경향은 근작에 들어 더욱 명확해진다. ‘Mirage 시리즈’는 인물의 이목구비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비교적 단순한 색 면으로 대상을 재현했음에도 역설적이게도 작가가 기억하고 포착하고 싶었던 사진의 순간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런 작가의 회화적 장치는 카메라의 다중 노출로 맺힌 사진 이미지와 결합해 “대상들이 세계에 생성하고 간 흔적”을 화가로서, 사진가로서 담아낸다.

 

작가는 이런 느슨한 몸들을 “유령의 부산물”,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는”, “몸 없이 떠도는 순간”, “흐릿한 형상” 등으로 명명한다. 이 런 신기루 같고 아련한 존재들을 회화라는 물질의 세계로 다시 불러 들인다. 작가와 재현 대상의 관계는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촬영 자, 유령 그리고 구경꾼”을 연상케한다. 여기서 촬영자는 심경아 작가 될 것이고, 구경꾼은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 유령은 사진 찍힌 대상이 발산하는 환영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밤에 갖는 술자리, 약속들의 대개 해가 뜨기 전에 헤어져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을 가지 고 있다. 작가가 붙잡고 싶은 순간, 대상들은 해가 뜨기 전에 사라지는 유령과 같은 존재,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에 홀린 것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신기루 같았던 시간들 말이다.

 

가장 최근 작품인 <lemonade heart>에서 구상성은 더욱 탈각되고 흐트러진다. 사진에 종속 되어있던 색채 사용 역시 더욱 자유로워 졌다. 짙고 검푸른 밤을 바탕으로 반짝이는 순간들, 찰나의 기억들이 흩뿌려져 있다. 마치 만취 후, 필름이 끊겨 버린 기억들의 파편들 과 같다.

Exhibition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