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탐구생활>전은 주변의 환경과 사물을 관찰하는 일상에서 출발해 각기 다른 매체와 스타일로 작업하는 네 명의 작가들, 박경진, 박영선, 윤소연, 이응우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최근의 화두인 증강현실, AI 등의 첨단과학이나 K아트, 한국미술의 글로벌 맥락 등 미술계가 주목하는 트렌드에 무심한 채 소소한 일상의 것을 부단히 탐구하며 매일의 작업에 몰두해 있다. 이들에게 일상은 생활 쓰레기일 수도 있고 늘 다니는 산길이기도 한데 때때로 이런 특별하지 않은 소재들은 탐구를 통해 예술로 변모해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
윤소연은 택배 상자, 쇼핑백 등 한때는 기대를 담았다가 내용물을 취한 후 버려지는 쓰레기를 회화적 방식으로 재활용한다. 포장의 기능을 상실한 후 가치를 다한 사물의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그 안에 다른 것을 담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자본주의적 욕망의 표상인 쇼핑백과 포장상자 안에는 의외로 그의 평범한 일상풍경이 자리해 있다. 윤소연은 버려진 포장재라는 쓸모 없는 것의 쓸모를 다시 제안하면서 자신이 늘 복기하는 별 것 없는 일상의 소중한 쓸모를 회화를 통해 환기시킨다.
박영선의 최근 작업은 평소 흔히 사용하고 버려지는 생수병 등 플라스틱 사물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현대문명의 수학적 세계관을 담은 자본주의적 생산물인 플라스틱을 차마 버리기도 품기도 어려운 곤란한 일상을 토로한다. 카메라를 쓰지 않고 감광지 위 물체에 직접 빛을 비춰 나타나는 추상적 그림자 사진인 포토그램과 슬라이드 프로젝터가 쏘아내는 빛에 의해 맺힌 상들의 우연한 이미지 조합인 그림자 그림을 실험 중이다.
어릴때부터 등산이 삶의 일부였던 박경진은 산 속에서 느낀 감상이나 인상적인 풍경을 사생을 통해 기록한 후 추상적으로 재현한다. 어떤 광경이든 휴대폰에 저장하는 요즘 방식과 달리 노트와 펜을 들고 산행을 나서는 순간 그의 작업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산불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세간의 시각과 다르다. 불에 탄 산을 재난의 현장이나 자본의 손실로 보기보다 자연적 현상이자 일상적 순환으로 바라본다. 가본 적 없는 이미지를 디지털로 조합하는 것에 더 익숙한 최근의 예술환경에선 드물게도 걸어서 손으로 회화적 아틀라스를 그려나간다.
공주에서 시작된 자연미술가협회 야투의 창립멤버로 그 역사를 같이해온 이응우는 주위에 버려진 자연 재료를 주워 와 미리 수립한 계획이나 아이디어 없이 작업에 돌입한다. 8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유행 중이던 서구적 모더니즘 아트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나간 야투 작가들은 물가에서 멍을 때리거나 풀밭을 서성이고 염소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창립전을 치렀다고 한다. 계룡산 자락에서 만난 이응우는 평범한 일상행위가 예술로 거듭나는 전통에 대해 또 ‘소멸해야 더 아름다운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상탐구생활>은 또한 우리 공예의 현대적 쓰임을 도모하는 ‘일상여백’과 함께한다. 과거 일상용품이던 자기, 바구니, 소반 등이 현대에 와서는 박물관 문화재나 장식품으로 박제될 위기에 놓여있다. 일상여백은 전통 공예에서 예술품 꼬리표를 떼고 그 쓸모를 다시 일상화하려는 시도를 개척 중이다. 전시는 일상여백이 소개 중인 공예작가들의 작품들과 네 명 작가들의 회화와 사진이 담백하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마련한다.
대세를 좇기보다 사변 탐구에 몰두하는 일상생활은 사회가 주도하는 대로 욕망하지 않겠다는 예술의 기본 속성을 실천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인 동시에 국가, 사회, 미래 등을 논하는 거대 담론이나 새롭고 전위적인 개념에 대한 강박을 무력하게 만드는 평화로운 무기다. 지극히 사적인 이유와 방식으로 창작을 일상화하는 네 명의 작가들은 개인적 사유와 자연스런 호흡에 집중하고 소멸하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나에게 의미 있는 일상’을 작업과 함께 구현하고 있다.